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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삐노 2021. 8. 29. 15:14

 

오래전부터 바벨탑에 대한 이미지가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날 새벽, 머리 속에 쿡 박힌 바벨탑의 모습은 어떤 수술로도, 어떤 치료약으로도 도려낼 수없는 악성 종양처럼 내 머리 속에서시간과 함께 자랐고, 지금은 세상 밖으로 튀어나갈려는 듯 마그마처럼 부글거리고 있다.

 

나에게 바벨탑은 더이상 신화, 역사, 성경에서나나오는 전설의 탑이 아니다. 처음 나의 머리 속에 바벨탑의 주춧돌이 놓이던 그 순간부터한 개, 두 개 벽돌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현재' 속에 분명히 서 있는탑이 되었다. 창의 커튼을 열면 바벨탑의 엄청난 높이와 그 크기가 압도하는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미친 것일까? 물론 나의 눈에도 바벨탑의 모습이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거대한 건축물이 존재한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바벨탑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성을 부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갔다.

 

이 세계에는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것이 무수히 존재한다. '전기'나 소리의 '파장' 혹은 '양자'처럼.우리는 그것들을 볼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실재하며 또한 그것들의 특성을 이해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 G장조 Kv.453]의 실재성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누구도 전기에 감전된 경험을 해보았다면 전기의 실재성을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 그날 새벽 나는 바벨탑에 감전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 거대한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너무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란 20Hz~20,000Hz 사이에 존재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고교시절 물리 선생은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는 너무나 거대해서 우리가 그 소리를 전혀 들을 수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리는 아무리 귀 귀울여도 가장 가까이 자신의 눈꺼풀이 여닫히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다 .우리의 시각도 이처럼 너무 거대한 사물이나 너무 작은 사물에 대해서는 결코 볼 수가 없다. 바벨탑은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건축물이며 오직 바벨(神의 문)의 의미를 아는 자만이 그 문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랫동안 바벨탑에 대한 전설은 각 시대의 예술가들, 역사가들, 과학자들에게 수많은 영감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신들이 인간의 도전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때문에 인간에게 제 각각의 언어를 주어서 하늘 끝까지 올라오던 탑을 파괴했다는 전설은 예술가들에게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였으며, 동시에 역사적인 진위를 따지기 좋아하는 고고학자들에게는 필생의 업적이 될 유물을 찾아낼 수있는 지도였다. 한편 건축가들에겐 과연 하늘까지 오르려면 어떤 구조와 규모로 건설해야 하는지 궁금한 사항이었다. 그런 까닭에 중세시대의 그림을보면 상상력으로 그린 바벨탑이 여러가지 형태로 등장하며, 오늘날의 백과사전을 들춰보면 바벨에 대한 풀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바벨탑

 

인류역사의 초기, 즉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의 후손들은 다시 시날(바빌로니아)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세우기로 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그들의 탑 건축 목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탑을 쌓아올려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고 홍수와 같은 야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신 야훼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물로써 대심판을 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의 표징이 무지개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야훼를 불신하는 상징으로 바벨탑을 세운 것이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야훼는 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시켜 멀리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 건축이 중단되게 하였다. 그래서 이 지명을 바벨(Babel), 또는 바빌론(Babylon)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그가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창세 11:9)는 내용이다.

 

이 탑의 크기를 헤로도토스의 《역사》 등 여러 고증을 통해서 보면, 1층이 길이 90m ·너비 90m ·높이 33m, 2층은 길이 78m ·너비 78m ·높이 18m, 3층은 길이 60m ·너비 60m ·높이 6m, 4층은 길이 51m ·너비 51m ·높이 6m, 5층은 길이 42m ·너비 42m ·높이 6m, 6층은 길이 33m ·너비 33m ·높이 6m이고, 7층이 길이 24m ·너비 24m ·높이 15m로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는 각 민족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현상의 유래담()이 근간이 되어 합성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기원전 3세기 바빌론의 신관이자 역사가 베로수스는 인간들이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나 다음과 같은 사건 때문에 언어가 달라지고 다른 민족으로 나누어졌다고 기록했다.

 

"최초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너무 믿어 신을 경멸하고 자신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날 바빌론이 있는 곳에 높은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 탑을 무너뜨렸다. 탑의 폐허는 바벨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했는데, 신은 이들로 하여금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바벨탑이 상상의 건축물이 아니라 실재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지구라트'라는 건축물이 존재하는데 바벨탑은 바빌론에 지어진 지구라트의 하나일 뿐이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3,000-500년 사이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을 모시는 수백 개의 지구라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바빌론, 우르크, 우르와 같은 주요 도시들은 도시 중앙에 거대한 지구라트를 갖추고 있었으며 현재 유적이 확인된 것만 해도 30곳 이상으로 지구라트는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작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지구라트는 우르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1천2백년 경에 건설됐다. 5단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50m다. 꼭대기에 있는 신전은 신관만이 출입할 수 있고, 일반인은 1단까지만 접근이 허용된다. 이 지구라트에서 올려지던 의식에 대한 기록은 지구라트가 종교적인 용도로 사용됐음을 말해준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엄선된 한쌍의 남녀는 지구라트 위의 신전 앞에서 엄숙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식이 끝나면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가족들은 신전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두 개의 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신랑과 신부는 성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들이 관속에 뉘어지면 수행원들도 독약을 마시고 부부를 따라간다. 곧 가축들을 제물로 바친 후 무거운 돌문을 닫는 것으로 의식은 끝난다. 이들의 성스러운 죽음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신들의 은총이 내려져 풍요와 영원한 삶이 보장되었다 한다.

 

독일의 고고학자 콜데바는 자신이 바벨탑을 발굴했다고 주장했다. 1913년 그는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점토판을 발견했다. 점토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다. 몇가지 자료를 종합해 조사한 결과 바벨탑을 세우는데 모두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으며, 건물의 규모는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가 헤로도토스가 기록한대로 약 90m에 달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이제 바벨이 실재하는 탑이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상상의 수준에서 실재의 수준으로 내려온 것이지, 여전히 과거형에 그치고 만다. 기원전 1,200년 전에 만들어진 50m 높이의 지구라트와 바빌론에 세워진 90m 높이의 지구라트. 지금 시대에도 90m 높이, 그러니까 40층에 달하는 높이의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구라트와 달리 바벨탑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탑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만든 탑이 한갓 눈에 보이는벽돌로 만들어 질 수 있었다고 믿는 건, 바벨탑을 발견했다고 믿고 싶은, 그리하여 바벨탑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불멸로 만들고자 한 독일인 콜데바의 욕심일 뿐이었다.


독일인 콜데바의 주장대로 바벨탑은 바빌론,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 세워져 있었던 과거의 건축물이었다고? 아니다. 바벨탑은 과거에 지어져서 현재는 무너진 벽돌로 남아 있는 그런 건축물이 아니다. 또한 사막의 한가운데 모래폭풍 속에 숨겨져 있는 탑이 아니다. 바벨탑은 북극의 움직이는 빙하, 얼음 폭풍 속에 숨겨져 있는 탑이 아니다. 바벨탑은 바로 지금 당신이 아침에 눈 뜨고, 양치질을 하고, 신문을 보고, 저녁이면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안식을 취하는 도시 한 가운데, 당신이 무심결에 쳐다보는 하늘 한 가운데 태양빛을 통과시키며 서 있다.

 

이제 바벨탑과 그 곳에서 태어난 한 소년 그리고 소년을 만난 한 소녀의 얘기를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