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_대륙횡단여행

[5] 삐노와 폴의 파키스탄 오지 마을 표류기

삐노 2006. 8. 14. 22:40


폴과 나, 그리고 제3의 사나이를 제외하곤 그 어두침침하고 황량한 역에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낡은 역사 앞, 뿌연 가로등을 향해 참새만한나방들이 몸을 부딪혀 댔고, 그 아래 제3의 사나이가 말했던 승용차 한 대가 매미의 성충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폴이 뒷좌석에,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제3의 사나이가 키를 꽂고 돌리자 몇 년산인지 분간할 수 없는 도요타 매미가 아무튼 죽을 때가 다 된 것은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신음 소리를 툴툴 냈다. 그리고 헤드 라이트 불빛을 향해 참새만한 나방부터 메뚜기, 모기, 각종 풀 숲의 날벌레들이 가미가재 특공대처럼 마구 부딪혀 오는 어두운 길이 시작되었다.

3의 사나이를 따라,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마을로 가는 길. 폴처럼 호주머니 속에 호신용 나이프를 움켜 쥐고 있어야 할 정도로 불안하진않았지만, 전혀 긴장되지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높이 2m에 이르는 풀 숲 사이로 웅크리고 있는 허름한 창고들이 스쳐 지나갈 때는 축축하고 비릿한 슬래셔 무비의 장면들이 망막 뒤로 인서트 되면서 불안감이 끈적 끈적 지네의 발처럼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내가 운전대를 쥐고 있는 제3의 사내를 만난 것은 마침 폴이 열차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화장실의 빈 칸을 찾아 나선지 5분이 지나지 않아서였었다.

- 어디까지 가죠?

밤 기차, 열차와 열차 사이의 좁은 공간. 지난 역에서 두꺼운 옆구리에 끼고 올라탄 삼십대 초반의 파키스탄 사내가 영국식 영어로 질문을 했다.

- 이슬라마바다.

- 좌석도 없이 이렇게 서서 가기엔 너무 먼 길인데요.

우편 열차에서의 황홀한 밤은 1박으로 끝나고, 다음날 우편 열차가 떨어져 나가면서 폴과 나는 입석표를 사야 했다. 그 후엔 여느 입석객들처럼 줄곧 서서 여행을 하게 있었고, 나의 발바닥은 자기만이라도 좀 떼어서 선반에 올려달라고 아우성을 쳐대고 있었다, 무릎은 무릎대로 욱신거리고.

- 다음 역에서 저랑 같이 내리는 게 어때요? 내 차로 우리 집까지 가서 오늘은 편히 자고, 내일 페샤와르로 가는 고속 버스를 타요. 페샤와르에서 이슬라마바다까지는 거리도 얼마 안 되고 버스도 많거든요. 제 말대로 하는 게 나을 겁니다.

승객들로 미어터지는 기차 안에서 겨우 화장실을 찾아 볼일을 보고 온폴이 나와 대화를 나누는 파키스탄 사내를 힐끔 쳐다보더니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나의 대답. 폴의 의심스러운 표정.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니!물론 그의 제안이 의심스럽다 할지라도피곤한 우리들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잠 한숨 잘 수 없는 상태로, 더 이상 야간 열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무리다. 폴, 아무려면 우린 둘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래, 사실 나도 더 이상 서 있을 기력이 없어.

- 어떻게 결정을 내렸나요?

- 네, 당신 말대로 하기로 했어요.

- 잘 선택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제3의 사나이를 따라가는 하멜 표류기, 아니 폴과 나의 파키스탄 오지 마을 표류기가 시작되었다.나는 지금도 그 마을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론리 플래닛], [세계로 간다]같은 흔한 가이드북 한 권 나의 배낭에는 들어 있지 않았고, 내 유일한 길잡이이자 가이드북인 세계 지도 어디에도 그가 말하는 마을 이름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하긴, 남한으로 치자면 부산 - 대구 - 대전 - 서울과 같은 지명 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런 축적 지도였으니.

3의 사나이를 따라 간이역에서 내리자 마자 폴은 슬그머니 배낭 속에서 나이프를 꺼내 바지 호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그건 폴이 만일에 대비해 소지하고 있던 호신용 칼로 방아쇠와 같은 고리에 인지를 끼우고 휘두를 수 있게 제작된 특수 칼이었다.

- R, 멋지지 않아? 크로아티아에서 10달러에 샀는데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게 호신용으로 딱이야. 이라크전 이후, 이슬람 국가에선 백인에 대한 인식이 안 좋기 때문에 만일에 대비해야 돼. 얼마 전 독일인 여행자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테러를 당하기도 했거든. 백인이기만 하면 미국인으로 착각하는 외국인들이 많아.


3의 사나이를 따라파키스탄 시골 마을에 도착했을 때 조차도저녁 풍경은 아스팔트 킨트인 폴과 나에게 그다지 호의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불 꺼진 집들과 어두침침한 거리. 우리는 불안과 의심이 7:3으로 믹서된 표정으로 그의 집으로 들어섰다.

- 5분만 기다려 주실래요. 방 정리를 좀 해야 겠어요.

5분 후의 세계. 소파와 퀸 사이즈 침대가 있는 방. 그는 차가운 냉수를 가져와 탁자에 내려놓고는 화장실의 위치와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오늘은 많이 늦었으니 씻고 주무세요. 아침 7시에 깨울 테니 그때 봐요.

기차에서 내린 후로 줄곧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만일에 대비하던 폴뿐만 아니라 나 역시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재우는 사내의 호의에 대해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 R, 침대에서 자본 게 얼마만이야?

- 그러게 말이야. 목욕까지 하고 나니 정말 가뿐한군.

- 근데, 저 친구는 뭘 믿고 우리에게 방을 빌려 주지? 설마 자고 있는데 덮치는 건 아니겠지?

-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자고 싶어.

- 그래. 나도 졸리긴 마찬가지요. 잘 자. R.

그날 밤, 폴이 호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고 잠 들었는지, 아니면 그래도 만일에 대비해서 나이프를 호주머니에 넣어둔 채 잠들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아침의 새소리와 함께 방문 앞에선 두 소년의 호기심 가득한 검은 눈동자에 우리에게 남아 있었던, 일말의, 만일에 대비하던 자세는 완전히 무장 해체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의 가장이었다. 집안에 방이 2칸에 불과하고, 우리들을 위해서 그와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아이들 방에서 함께 잠 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미안하기까지 했다.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낯 선 이방인을 재웠던 것일까? 그는 그저 당신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그땐 그저 인샬라. 그리고 그는 우리 모두가 친구라는 싱거운 대답을 던져 주었다. 친구.

- 파키스탄에서도 여자들은 거리를 다닐 때, 차도르를 하던데, 당신의 아내는 하지 않나요?

- 여긴 집 안이쟎아요. 그리고 친구나 친척들 앞에서는 괜챦아요.

- 그래도, 우린 외국인인데.

- R과 폴은 우리 집에 놀러온 나의 친구쟎아요.

아이들의 볼에 뽀뽀를 하고, 아내와 눈인사를 한 그는 페샤와르로 가는 버스는 오후 5시쯤에 도착하니, 오전엔 자신의 학교를 구경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좋아!그러나, 대문을 여는 순간, 우리가 쉽게 그의 집을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 앞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서 있던 것이다.

맨 앞에 서 있던 중년의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뭐라고 한 마디를 했는데 아마도 그건 자신의 이름인 듯 했다. 폴과 나에게악수를 청하고 사내는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음 사내도 손을 내밀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번갈아 악수를 하고, 다음 노인, 다음 소년, 또 다음 청년…….노인에서부터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그 마을에 외국인이 나타난 것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악수의 의식은 그날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그가 데려간 초등학교에서도, 마을 법정에서도, 전교생과 마을 판사들, 검사들, 변호사들.한나절이 지나고 나자 손아귀가아플 지경이었다.폴과 나는 한국과 폴란드에서 온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고 칼이아니라 방긋 방긋 웃으며 손을 써야 할 일들이 계속해서 생겼다.제주도에 불시착했던 하멜도 그랬을까?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의 14년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이방인에게 폐쇄적이고 비호의적이었던 조선 사람들은 하멜에게 그다지 행복한 만남을 가져다 주지 않은 듯 하다. 우리가 마치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모험담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조선의 문물과 관습을 서양에 처음으로 알린 서적 정도로만 알고 있는 하멜 표류기는 17세기 중반 조선이란 나라에 이방인으로서 억류 당하며 군역, 감금, 태형, 유형, 구걸의 풍상을 겪었던 네덜란드 선원의 고난에 찬 기록이다. 하멜은 억류된 지 14년이 지나서야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홍반장처럼 초등학교 선생 겸 야간 법학과 대학원생이며, 동시에 비디오 대여점 주인인 그가 오후 수업을 위해서 학교에 가 있는 동안 폴과 나는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마을을 어슬렁 거리거나 그의 비디오 대여점에서 시간을 보냈다.헐리우드 영화들로 가득한 비디오장.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트루 라이즈], 파키스탄의 오지까지 제임스 카메론이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깡깡.

수업을 끝낸 무샤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페샤와르로 가는버스표 두 장을쥐고 있었다.

- 아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 R과 폴은 나의 친구쟎아요. 친구를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곧즐거움이지요. 이슬람에서는 친구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겨요. 서구 사람들은 Made in USA 영화들만 보고선 눈에는 눈, 코에는 코, 이에는 이, 피의 보복이 무슬림의 전부인 것처럼 알지요. 그러나, 사실 이슬람은 ‘관용의 종교’예요. 무슬림에겐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집을 찾아온 손님은 오랜 친구처럼 대하는 게 자연스런 일이랍니다.

- 우린 아무 것도 해 준 게 없는데……너무 고마워.

- 언제든지 다시 놀러와요. 이슬라마바다에 들렀다가 다시 와도 좋고,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와도 좋아요. 한국인은 6개월동안 무비자로 지낼 수 있다고 했으니, 언제든, 몇 달이든 R이 머무르고 싶은 만큼 지내요.

타이어와 유리창을 제외하면 온통 꽃 무늬로 장식한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그가 건네준 버스표를 들고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잡았고, 버스가 시동을 걸자 그가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버스가 천천히 복잡한 거리의 리어카와 행상들을 피해 움직이기 시작할 때, 다시 나타난 그가 버스를 향해 달려왔다. 창문을 열어 뒤돌아 보자, 그가 두 개의 봉지를 건네주었다. 잘 가요, 친구들. 인샬라. 그가 건넨 봉지를 열어 보았을 때, 그 속에 들어 있던폴과 나를 위한 따끈 따끈한두 마리의 통닭.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오래 오래 손을 흔들고 있던 무샤프.그 마을에서폴의 나이프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마치 동막골에서의 칼빈 소총처럼.

광대한 우주, 무한한 시간. 그 속에서 같은 시대, 같은 행성을 당신, 무샤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서문]을 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