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_썸플레이스

썸플레이스 15 - [불가능한 여행기]와 세인트로렌스강

삐노 2009. 11. 25. 01:21

자크 카르티에가 도착한 지 474년 후, 유람선을타고 몬트리올을 지나며

인공위성이 없던 시절, 그러니까 GPS도, 비행기도, 여행가이드북도 없던 시절의 여행자는 어떻게 대륙을 횡단하고 대양을 오갔을까? 물론 콜럼부스가 달걀을 깨뜨리기 전부터 지도는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전까지 유럽의 지도라는 것은 부둣가 뱃사람의 허풍보다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지도 제작자들은 항구에서 떠도는 소문들에 기초해 최신판 지도를 만들어 내기 일쑤였고, 어떤 지도 제작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섬을 갖고 싶다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가상의 섬을 그려 넣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서해에서 보물선을 건져 올리겠다고 용쓰는 사람들이 21세기에도 존재하듯이, 엉터리 지도와 소문을 믿고 먼 길을 떠나고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 당시엔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자크 카르티에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캐나다 동부에 도착하면 늘 듣게 되는 이름, 올려다보게 되는 동상, 마주치는 간판이 '자크 카르티에'였다. 퀘벡과 몬트리올은 북아메리카 내륙에서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생긴 도시로 저마다 자크 카르티에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람선을 탈 때면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처녀지'라고 여기며 세인트로렌스강을 거슬러 오르던 카르티에의 기분을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비록 유럽인들이 아시아를 향해 떠났던 여행 동기가 여행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첫째 돈, 둘째 파라다이스 신드롬, 셋째 명예였다 하더라도 그 시절의 여행은 정말 흥미로웠으리라. 낯 선 풍경, 예측할 수 없는 날씨, 처음 보는 과일, 말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 아아, 탐험의 시대!

매튜 라이언스는 '허구와 진실이 불분명한 그 시절'에 기록된 숱한 이야기들 속에서 네 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24편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발췌해서 들려준다. 이름하여 <불가능한 여행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가고자 했던 여행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갔다거나 그곳을 보았다는 여행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는 여행

실제로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믿기 힘들거나 있음직하지 않은 여행

대부분 이야기들은 중국, 몽고, 인도 등 아시아로 가는 길에서 생긴 일들이다. 어떤 이는 마르코 폴로가 그랬듯이 해 뜨는 동쪽을 향해 떠났고, 어떤 이는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그랬듯이 해 지는 서쪽으로 떠났다. 그리고 갖은 고생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인물들은 허풍쟁이가 되곤 했다. 어차피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인데 좀 과장한들 뭐 어때? 혹은 여행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후원금을 마련하려면 최소한 금덩어리가 구르는 강과 수정으로 된 산 정도는 있다고 구라를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크 카르티에는 스스로 구라를 푸는 대신 자신을 대신해서 구라를 풀 인디언 추장을 납치해 프랑스로 데려갔다. 아마도 인디언 추장은 카르티에에게 그랬듯이 프랑시스 왕에게도 금과 루비로 가득한 나라뿐만 아니라 항문 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이야기도 했으리라. 초등학생도 뻥치지 마라며 버럭 할 이야기지만 어떤 합리적인 만류도 프랑시스 왕의 정복욕을 단념시킬 수는 없었다. 황금에 눈 먼 자들에겐 뻔한 허풍을 분별할 지혜도 생기지 않는 법이니까. 이 사람아, 인디언 추장은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꾸며낸 거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