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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플레이스 13 - [럼두들 등반기] 인수봉에선 절대 읽지 마세요

삐노 2009. 10. 29. 01:37



선선하고 청명한 가을이다. 등산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 무렵이면 전세계에서 수많은 트렉커들이 히말라야 산맥으로 몰려든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의 인기는 대단하다. 오죽하면 인천~카트만두 직항로가 열렸을까? 그러나 이 무렵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는 건 거의 북한산을 오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빨리 안 가면 화살코로 똥침을찔러버리겠다는 뒷사람에게 밀리고, 앞 사람의 엉덩이에 거의 내 코를 처박다 시피하면서 올라가는 동안 하산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또 안녕하세요.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물론 총길이 2400㎞에 이르는 히말라야 산맥엔 여러 갈래 트레킹 코스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높이’와 ‘명성’ 때문에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코스로만 몰려든다. 우리 삶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유유자적 ‘산’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면 랑탕 히말라야 코스가 최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낡은 버스를 타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을 따라 샤브로베시에 도착한 후, 당신은 해발 5000m에 이르기까지 랑탕 강을 끼고 펼쳐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을 만나게 될 것이다.

랑탕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 지 나흘이 지났을 무렵, ‘평화 가득한 식당’에서 티베트계 요리사 우낀 라마를 만났다. ‘우낀’은 ‘웃긴’의 오타가 아니다. 그의 이름은 정말 ‘우낀’이다. 카메라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그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심오한 표정을 지닌 사내다. 근데 심각한 표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진스러움 때문에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계속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것이 웃기기 위한 의도에서 나오는 '표정과 말의 절묘한 조합'이라면 정말 최고의 개그맨이다. 마치 <럼두들 등반기>를 읽는 것 같다.

럼두들은 해발 1만2000m가 넘는 설산. 바인더가 이끄는 등반대가 정상에 오르기 전까진 전인미답의 봉우리였다. 바인더는 길잡이, 보급 담당, 과학자, 의사, 통역사, 사진촬영 담당으로 이루어진 최정예 대원(?)들과 요기스탄인 포터들을 이끌고 럼두들 원정에 나선다. 근데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길을 읽어버리기 일쑤인 길잡이, 6명 원정대를 위한 포터가 3000명이 필요하다고 계산해놓는보급 담당, 발음상의 실수로 무려 3만명의 포터를 모집하게 만드는 통역 담당, 해면의 높이가 해발 153피트라고 계산하는 과학자, 저 혼자 온갖 질병에 걸려 골골거리는 의사까지. 배가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등반대가 통째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지경이다.

‘과연 우리가 이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처절하게 이어지지만, 독자로선 사건 하나하나가 포복절도할 해프닝이다. 등반대는 기어코 세계 최고봉 럼두들 정상에 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반대장, 바인더를 역대 알피니스트 이름에서 찾을 순 없다. 왜냐면 그는 윌리엄 어니스트 보먼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럼두들도 가상의 나라, 요기스탄의 산이다.

산악인 사이에서 전설이 된 이 책을 작가 심산은 인수봉 같은 곳에서 비바크를 하는 도중에는 절대 읽지 말라고 경고한다. 주체할 수 없는 웃음 때문에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근데 도심에서 특히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에도 절대 이 책을 펼쳐 들면 안 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웃음 때문에 미친놈 취급 받기 십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