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_대륙횡단여행

[6] 히피 빌리지, 1969년 우드스톡의 목격자

삐노 2006. 9. 12. 16:48


내가 처음으로 히피들을본 것은런던에서, 댐즈강을 오가는 유람선의 선원으로 일하며 지내던 동네에서였다. 언더그라운드에서내려집으로 오는 길에는 펑크족과 타투족 - 그들의 외모가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면 [전사의 후예]라는뉴질랜드 영화를 보길 바란다. 그날, 불면증에 맥주나 한 잔 하려고 집을 나서 조용한 거리를 걷다가 오늘은 이 집에서 마셔볼까, 술집의 문을 열었을 때, 귀청을 찢는 음악 소리와 실내에 가득 찬문신의 사내들과펑크 머리의 여자들. 낯 선 동양인에게 꽂히던 수십개의시선. 이럴 땐 정말 문을 닫고 나가기도, 문을 열고 들어서기도 쉽지 않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 원 파인트 비어! )들이 하드 락의 열기와 뿌연 연기 속에서온몸을 부딪혀 대는클럽이 있었고,

큰 길에서 나의 허름한 아파트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온통 새까맣게 칠해진, 쾌 규모가 큰 오디토리엄이 있었는데, 새까만 건물의 이마에는 하얀 글씨로 금//일의 공연 스케줄이 큼지막하게 씌여 있었다. BEATLES, WHO, CRASH, WHAM, NIRVANA, PEARL JAM. 보이스에서부터 기교까지 오리지날 밴드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을 듯한 시뮬라크라.

그리고 골목을 내려와 공원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공원 한 가운데 이슬이 떨어지는 술집 (Dew Drop Inn)이란 동성애자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었고, 아파트로 들어서기 직전 맞으편에는 벽면 가득 해바라기와 비둘기들이 그려진 또 다른 아파트가 있었다……그 아파트에선 언제나 기묘한 냄새가 났다. 히피 빌리지였다.

히피 [hippie]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청년층을 주체로 하여 시작된, 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이듬해에 뉴욕·로스앤젤레스·버클리·워싱턴 등의 대도시로 퍼져 나갔으며, 파리·런던까지 파급되었다.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해피(happy:행복한)에서 나왔다는 설, 히프트(hipped:열중한, 화가 단단히 난)에서 나왔다는 설, 재즈 용어인 힙(hip:가락을 맞추다), 엉덩이를 뜻하는 힙(hip), 갈채 등을 보낼 때의 소리 ','등에서 나왔다는 설 등이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유와 사랑을 찾고, 비둘기의 힘, 꽃의 힘(평화의 상징)을 사랑하며, 자신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차림새는, 남성은 장발·수염투성이에 펜던트와 굵은 벨트에 부츠를 신었고, 여성도 장발·미니스커트에 샌들 또는 맨발이다. 그들은 대도시 안에서나 교외에 히피 빌리지를 형성하는데, 그러한 곳에는 젊은이들의 탈사회적 생활방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기부금 등으로,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시설까지 마련되어 있다. - D 백과사전

물론 그곳이 히피 빌리지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젊은이들이었던 탓에 1969년대산 오리지날 히피를 본 적은 없었다. 사망했거나, 멸종했거나. 물론 6층 꼭대기의 어두침침한 방에서 God Father 처럼 패밀리들이 가져오는 문제들을 더듬 더듬 나지막한 소리로 처리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아파트에 들어가 보지도 않은 채 젊은 시절의 치기 어린 상상을 그 아파트에 투영 시키곤 했는데. 가령 이런 식이었다.

그 아파트엔 각각의 집과 집들을나누는 벽이 없다. 301호의 거실은 302호의 화장실로 뚫려 있고, 302호의 베란다는 303호의 베란다로 연결되어 있으며 303호의 부엌에서 403호의 부엌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가 놓여 있는, 그런 곳이다.그곳엔 나의 아버지란 개념이 없다. 누구의 뱃 속에서 태어났느냐만을 알려주는나의 어머니만이 있을 뿐. 모든 아이들은 공동체의 자식이며 그들은 공공 교육이 아닌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에 따라 번갈아 가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친다.

그렇게 멀찌감치서 상상만 하거나 책이나 영화, 음반 속지나 리뷰 속에서 읽었던 히피를, 그것도 1950년대산 히피를 만난 것은폐샤와르를 지나 이슬라마바다에 도착해서 베낭을 내려놓은 캠프에서였다 .

오후의 태양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폴과 내가 정한 그 캠프는 하루 숙박비 300(개인 소지 텐트 야영시) 600(캠프 건물동)으로 이슬라마바다에서 가장 저렴한 숙박 장소였다. 개인용 화장실이나 샤워실, 식당 조차도 없었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겐 최저의 가격이란 것 자체가 최고의 스위트룸.

어떻게 그곳을 알아냈느냐고? 대륙 횡단을 하면서 가이드북 한 권 갖고 있지 않은 나에게, 반대쪽에서 그리니치를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은 살아 있는 인포메이션 데스크였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를 수소문을 하면 한 두명은 꼭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은 교통 편에서부터 암달러 시장과 달러를 파는 법까지 상세하게 알려주곤 했다. 이란과 같은 경우엔 은행과 암달러상에게 환전을 하는 게 두 배나 차이가 났다. 말하자면 은행에서 100달러를 환전하면 150,000원을 받는데 암달러상에게 바꾸면 300,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예상했던 이란 경유 경비를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그런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던 이들 중 한 여행객이 이슬라마바다에 가면 꼭 들르라고 했던 장소가 바로 그 캠프였다. 캠프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니판타스틱 캠프라고 해두자. 왜 판타스틱인지는곧 알 게 될 것이다.

- , 여기 이름과 목적지를 적으시고, D- 1 동으로 가세요.

화장실은 공용. 식당은 없다. 그 정도는 예상했던 바다. 그러나, D- 1 동의 문을 연 순간, 폴과 나는 말문이 순간 닫혔다. 그 흔한 매트리스나 간이 침대 조차도 없다. 심지어 바닥재도 깔려 있지 않다. 콘크리트로 된 4개의 벽과 콘크리트로 된 천정과 바닥. 사각형의 콘크리트 큐브. 5초 후, 폴이 어이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헤이, R! 환상적인데!!! ㅎㅎㅎ 그러나 정작 환상적인 것은 콘크리트 큐브가 아니었다.캠프에서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 자체가 환상이었던 것. WELCOME TO FANTASTIC CAMP. 짐을 내려놓고 방문을 나서자 껑충한 키에 머리를치렁 치렁 기른 할아버지가 어슬렁 어슬렁 다가왔다.



- 하이, 친구들.

- 하이!

바싹 마른 체격의 할아버지. 기분 좋은 웃음과 따뜻한 눈매. 그의 인상을 지금에 와서 설명하자면 [러브 액츄얼리]에서 Love is All Around 란 곡을 개사한 Christmas Is All Around 를 부르던 빌 나이히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 어제 내린 비로 성냥이 축축해서 켜지지 않는군. 라이터 가지고 있나?

그렇게 나는 만났다.1969년 우드 스톡의 목격자,오리지날 히피, 가장 순수한 환각제를 찾아서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히피 화가. 토마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