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3

썸플레이스 13 - [럼두들 등반기] 인수봉에선 절대 읽지 마세요

선선하고 청명한 가을이다. 등산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 무렵이면 전세계에서 수많은 트렉커들이 히말라야 산맥으로 몰려든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의 인기는 대단하다. 오죽하면 인천~카트만두 직항로가 열렸을까? 그러나 이 무렵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는 건 거의 북한산을 오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빨리 안 가면 화살코로 똥침을찔러버리겠다는 뒷사람에게 밀리고, 앞 사람의 엉덩이에 거의 내 코를 처박다 시피하면서 올라가는 동안 하산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또 안녕하세요.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물론 총길이 2400㎞에 이르는 히말라야 산맥엔 여러 갈래 트레킹 코스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높이’와..

썸플레이스 12 - 꿈꾸는 실험실, 예수원

기독교인도 아닌 내가 을 방문하게 된 건 엉뚱하지만 ‘크리스티아니아’ 때문이었다. 크리스티아니아는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코펜하겐의 버려진 군병영지에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공동체. 그들은 "인간은 법이 아니라 상식에 기초한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이상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는 실험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덴마크 정부는 아파트 단지를 짓기 위해 크리스티아니아를 철거하기로 했다. 그 뉴스를 접하고 나는 우울해졌다. 그러나 한편 호기심이 생겼다. 비록 남한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일컫지만 그 틀을 벗어난 사람들이 있듯 또 다른 삶, 또 다른 사회를 꿈꾸는 실험실도 있지 않을까? 인터넷을 통해 ‘공동체’를 찾아보았다. 전국 곳곳에서..

썸플레이스 11 - 내 다시는 이 시를 읊나 봐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야영장, 숲 속 오두막에서 맞이한 아침. 침낭 밖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잉잉거리는 소리가 그저 워크맨의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잠든 탓이라 여기며 뒤척거릴 때였다. 곁에 누워 있던 폴란드 친구, 폴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R, 일어났어?” “응” “문제가 발생했어!” “전쟁이라도 터졌어?”(침낭을 후딱 뒤집고 일어나려는 찰나) “안 돼! 일어나지 말고 천천히 침낭 밖으로 고개만 내밀고 봐.”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폴의 목소리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짐작은 했지만 침낭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라본세상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잉잉 잉잉 천장부터 사방 벽에 수천 마리 벌들이 달라붙어 있었고, 수백 마리 벌들이 잉잉거리며 천장,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