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_썸플레이스

썸플레이스 3 - 우리가 버려두고 돌보지 않는 것

삐노 2009. 4. 2. 13:53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어느 순간, 누군가가 말했다. 너는 천 개의 베개를 가졌어. 그 문장이 압정이 되어 길 위에 나를꽂아놓았던 것일까? 참 많은 장소에서 잠을 잤다. 봄날의 호숫가에서 달을 보며 잔적도 있고, 덜컹거리는 우편물 화차에서 잔적도 있고, 사막 한 가운데 은빛으로 흐르는 거대한 강을 올려다보며 잔적도 있다. 그 예언을 곧이곧대로 믿고 천 개의 베개를 다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가 잠든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니, 딱 한군데 싸리재를 제외하면.

싸리재는 오르는 방향에 따라 두문동재라고도 하는데 태백 고한간 국도 38번 위에 있다. 아니 舊국도 38번 위에 있다. 터널이 뚫리면서 싸리재는 등산객들이나 오가는 길이 되었다. 아니 석탄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이미 한적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시간대에 걸쳐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에서 싸리재까지 오가곤 했다. 국도가 지나가는 가장 높은 고개(해발 1268미터)는 나만의 동굴이었던 것이다. 돌담불 위로 초승달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어떤 책을 읽거나 떠올리기도 했다.<고개를 찾아서>로부터<침묵의 뿌리>에 이르기까지. 내가 싸리재를 알게 된 것은 김하돈의 <고개를 찾아서> 덕분이지만 그보다 먼저 싸리재가 있는 강원도 탄광촌으로 나를 이끌었던 것은 조세희의 <침묵의 뿌리>였다.

조세희의 문장을 읽을 때면 마치 스케이트 칼날이 얼음 위를 긋고 지나갈 때의 느낌이 난다. 그는 특유의 문체로 사북이란 장소를 통해 20세기말 한국의 현실을 동시대인들에게 알렸다. '나는 작가이다. 어떤 이의 말대로, 소설 나부랑이나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가는 물론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작가인 나에게 유별난 것이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잊는 것을 작가인 나는 좀처럼 잊지 못하는 것이다.' 사북의 역사가 20년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쓰여진 책이 출간된 지도 벌써 20년이 더 지났고, 사북은 <에덴의 동쪽>을 비롯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다. 그런 사북의 역사는 해방 이후 한국사의 축약판 같다, 산업역군과 카지노로 집약되는. 책 속에는 눈길을 잡아끄는 사진들이 점점히 박혀 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에서 반드시 좋은 카메라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야 나는 사진이 갖는 기능 가운데서 내가 힘 빌어야 할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기본 과제 해결에 그렇게 열등할 수 없는 민족인 우리가 버려두고 돌보지 않는 것, 학대하는 것, 막 두드려버리는 것, 그리고 어쩌다 지난 시절의 불행이 떠올라 몸서리치며 생각도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다시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즉 재소유시키는 기능이었다. - <침묵의 뿌리> 중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들을 보면 어떤 기시감에 휩싸이게 된다. 사진 속의 장소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놀고 탄광촌의 길을 걸었던 것만 같은 느낌. 2004년 사북을 찾았을 때 읍을 관통하는 개천가에는 <정든님>이란 이름의 술집이 있었다. 폐가였다. 그때 나는 <침묵의 뿌리>의 표지 속에서 처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소녀를 마주했을 때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버려두고 돌보지 않은 것’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인류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푸른 스물의 희망과 열정. 폐가의 문을 열면 옛 친구들이 왜 이제야 돌아왔느냐고 반겨줄 것만 같았다. 다시 사북을 찾았을 때 <정든님>은 리모델링을 하느라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2009년 서울 어느 곳에서 개발의 새 역사를 쓰느라 죽인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