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_대륙횡단여행

[17] 아무도 아닌 자의 노래, 굿 바이! 친구들

삐노 2006. 11. 15. 00:23

대륙의 서(西)에서 동(東)으로 오는 사이 창 밖의 풍경은 극명하게 달라져 갔다. 사막이 진경 산수화로, 진경 산수화는 어느새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는 공장들과 거대한 아파트 공사장으로 바뀌었고, 북경역에서 우리는 내렸다. 한때 자신이 노동자로 일했던 한국으로 향하는 젊은이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파키스탄인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야 한다면 떠났다. 그는 그 여행길에서 ‘노인들의 모습’ 외에는 한국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그가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겪었던 수많은 부당 노동행위와 체불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속으로 삼켰다는 것을.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前외국인노동자 인 코리아’의 눈동자 속에 파키스탄, 태국, 베트남, 미얀마, 네팔의 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박노해의 [손무덤]을 읽으며 울먹이고 있는 모습이 지나가고 있었다.

북경의 유스호스텔에 도착한 나와 무하마드는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산둥반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금성도 구경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것이 아쉬웠지만, 여동생의 결혼식에 도착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 이동수단으로, 다음 이동수단으로 마치 정글을 지나가는 타잔처럼 계속 다른 밧줄로 옮겨가는 수 밖에. 무하마드는 처음부터 자신의 여행경로가 나의 길과 같았다는 듯이 산둥반도까지 따라와주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 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는 듯이 위해항의 유람선 터미널에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섰다. R, 잘 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 인샬라!

그가 떠나고 나자 이젠 정말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배는 다음날 저녁에 있었다. 나는 하루에 1달러에 불과한 중국인 상대로 하는 여인숙을 잡았다. 외국인들은 호텔이나 유스호스텔에서 묵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인과 중국인은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여인숙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호주머니 속엔 이젠 3달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고깃국에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을 사 먹고, 맥주 한 병을 사 마셨다. 이젠 1달러가 남았다. 중국이라는, 아는 사람 한 사람 없는 이국 땅에서 호주머니 속엔 단돈 1달러뿐인, 이방인. 내일부터 국제부랑자가 된다 하더라도 두려운 건 없었다. 다만 곧 내 여동생의 결혼식이고 가족들은 늦어도 내일 런던발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내가 인천공항으로 입국을 하리라고 여기고 있을 텐데, 아,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면. 똑똑똑.

- 샬라 샬라 샬라.

나는 그 중국인 사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국인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서다가 다시 호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뭔가를 적어 보였다. 少姐. 소저?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가 예스! 소저! 텐달러! 라고 외쳤다. 중국 무협지에 등장하던 수많은 ‘소저’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여인숙의 매춘알선업자였고, 10달러에 여자를 팔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가 온리 텐 달러! 라고 다시 외쳤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가 여덟 개의 손가락을 내보였다. 8달러. 그는 내가 고개를 가로 젓는 걸 가격을 더 싸게 깍으려는 심산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노, 노. 그는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똑똑똑. 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중국인 숙박객이었다. 1달러에 묵는 여인숙은 2인용이었고, 같이 방을 쓸 손님이 들어온 것이다. 그가 중국말로 어떤 질문을 했지만 나는 이번에도 한국인이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그가 영어로 다시 여행객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도 나도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엇비슷한 까닭에 그와 잠시이야기를 나누었다.나는 조금 전 있었던 [소저 사건]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그는 내가 만약 저 맞은 편 호텔에서 묵었다면 밤새 호텔방으로 전화가 올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는 그곳은 외국인들이 주로 묵는 곳이니까몸 파는 여대생들이방방마다 무작정 전화를 건다고 말했다, 매춘을 하기 위해서. 하룻밤에 몇 십달러를 버는 건 중국에서 상당히 큰 돈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왜이곳에서숙박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집과 회사는 북경에 있는데,출장을 온 샐러리맨이라고 대답했다. 공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돌아온 그는 와이셔츠를 옷걸이에 걸고, 조용히 형광등을 껐다. 건너편의 철제 침대가 삐걱 소리를 내더니 곧 잠잠해졌다.

나는 잠들기 전 무하마드가 떠나기 전에 들려준 한 가지 이야기를 떠올렸다. 쉽게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들의 삶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어떤 것이 숨어 있는 듯 했다.

- R, 내가 한 가지 진리를 알려줄게, 마르크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자와 현자들이 말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과 같은 확고불변의 진리를. 가난하고, 부하고, 귀하고, 천하고에 관계없이 개개인이 탄생에서 죽음까지 겪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총합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제로(0)야. 죽음 때문에 제로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야. 설명을 해주고 싶지만 스스로 이 말의 의미를 알아내길 바래.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네가 이것을 깨닫게 되면 너는 그 어떤 것도 부러워하지 않게 되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야. 그리고 오직 너가 너 자신이라는 자체로 너를 사랑하게 되겠지. 잊지 마. 이 지구상에서 태어나고 죽는 모든 인간이 탄생에서 죽음까지 겪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총합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제로라는 것을. 네가 이것을 체득하게 될 때, 너는 아무도 아닌 자(Nobody)가 될 수 있을 거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옆 침대에서 잠들었던 중국인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호주머니 속에 달랑 1달러를 가진 나는 다시 한국행 유람선표를 파는 곳까지 걸어갔다. 11월의 중국 바다는 내 고향의 바다처럼 맑았고, 가만히 바라보면 인천항이 흐릿하게 보일 듯 했다. 그러나 나에겐 고국으로 돌아갈 여비가 없었다. 런던을 출발해 수많은 국경을 넘어 산둥반도까지 왔는데,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위기까지 넘기며 산둥반도까지 왔는데, 이제 저 배를 타면 되는데, 저 바다를 건널 돈이, 나에겐 없다. 헤엄을 쳐서 저 바다를 건널까, 배낭 안에 귀중품은 없다. 여권만 감고 저 바다를 헤엄쳐 건너는 게 허용될까? 그런 얼토당토 않는 생각을 하며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쳐다보고 있는 사이 두 명의 중국인 아주머니가 내 곁에 와 있었다……한국 가세요? ......어, 한국말이다.

- 네?
- 짐이 많으세요?
- 아니요. 이 배낭이 전부입니다.
- 어디 보자. 별로 무겁지는 않네. 저기 부탁이 좀 있는데.......
- 무슨 일이죠?
- 우리가 물건을 좀 사 갖고 들어가는데 1인당 들고 갈 수 있는 키로수가 정해져 있어요. 배낭무게가 이 정도면 20킬로는 더 들고 갈 수 있는데, 좀 들어다 주면 안될까? 한국 가서 차비는 두둑히 줄께.
- 도와드리고는 싶은데 사실 한국에 갈 배 삯이 없어요.
- 하이구, 마침 잘 됐네! 우리가 배 값을 대 줄테니 20킬로만 좀 들어줘. 자자, 어서 표 사러 갑시다!

당신이 길 위에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의 신은 당신을 내려다 보기 시작한다. 그러니 아무리 힘든 여행길이라 할지라도 내일을 위한 계획은 하되, 걱정은 하지 마라. 당신을 내려다 보는 여행의 신은 당신이 정말 간절히 무언가를 필요로 하면,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을 도와줄 테니. 여행이란 곧 우리들의 인생이다.

내 여동생이 결혼식을 올리기 하루 전날, 나는 고향에 도착했다.

나의 침낭 속에 숨겨져 있던 마리화나 씨앗들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인천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자 마약탐지견이 내 짐과 내 몸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으려는 찰나, 개를 붙잡고 있던 세관원이 물었다. 배낭여행 갔다 오나? 네. 바쁘니까 빨리 지나가!

나는 이 자리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행운의 여신이 내 어깨에 내려 앉았다고도, 앉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나의 침낭 속에 여전히 서른 여섯 알의 씨앗들이 들어 있었을지, 아니면 유람선을 타고 오며 캄캄한 바다 위에 그 씨앗들을 버렸을지 당신의 상상에 맡긴다. 아마도 삐노였다면......그것이 정답이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입국심사대를 빠져 나와 11월의, 해 뜨는 동쪽 나라의 햇살에 나의 발을 내미는 순간, 마치 버튼을 누른 것처럼 딸깍, 하곤 앤디 윌리암스의 [Happy Heart]가 머리 속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쉘로우 그레이브]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안 맥거리거가 방바닥에 누운 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카메라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터져 나오던 노래다. 왜 그랬을까? 그 음악은 내 귀속에서 계속 리플레이 되었고, 나는 귀속에서 울리는 그 음악 소리를 랄랄랄라 라랄라 랄랄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따라 부르며 길을 걸었다. 그 노래는 내 쌍둥이 여동생들로부터 양 볼에 키스를 받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아참, ‘천사들의 비밀’에 대해서 들려주지 않았군. 이건 비밀로 남겨두자. 아마도 이 얘기를 들려주더라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 만약 헝가리에서 만난 부랑자와 반야와 폴과 무하마드가 단 한 사람이었다면. 이 세상에는 마리화나 씨앗의 비밀처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할 비밀도 있다.

그럼, 이것으로 나의 길고 긴 이야기를 마친다. 굿 바이, 친구들.

내가유럽의 끝, 영국을 출발해해 뜨는 나라의인천항에 도착했을 때의 심정을

음악으로 한번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플레이 버튼을 "딸깍" 눌러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