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_대륙횡단여행

[12] 온몸의 세포마다 꽃이 피는 곳, 카라코람 하이웨이!!

삐노 2006. 10. 13. 23:13


- 나, 내년 여름에 히말라야로 갈꺼다.

- 뭐? 회사는?

- 내년 7월쯤에 그만 둬야지.

L의 말에 벗들은 안정된 대기업을 그만 두고 왠 히말라야냐, 결혼은 언제하고, 애는 언제 낳고, 아파트는 언제 사냐며 녀석의 다리를 붙잡았다. 대학시절, 자신의 동아리에서빌린 장비와나를 데리고 암벽 등반이나 릿지 등반(폭 2m 정도의 깍아지른 절벽 사이를 뛰어넘을 때면 온몸의 세포들마다 꽃이 피곤 했다. 고작 1초도 안 될 시간과 제자리 뛰기로도 충분히 넘을 2m의 거리가 아래가 깍아지른 수십 미터 절벽이고 보면, 허공을넘어 착지할 때까지 걸리는시간이마치 10초는 되는 듯 느껴지고, 그때 내 몸의 모든 세포들 마다마다에서피던 꽃들!!!)을 하곤 했던 L에게 히말라야는 언제나 꿈의 사과였다. 내가 말했다.

- L, 너 정말 히말라야에 가고 싶냐?

- 응. 이번엔 정말 갈거야.

- 그럼 이달 말에 당장 회사 그만둬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 일만 마치면, 이 일만 안 생겼으면, 그렇게넌 내년이면, 또 내년, 나중에, 그러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 두지 않으면 또 이런 저런 일로 너는 떠나지 못할 것이다. 내년 7월에 그만두는 것은 너무 늦다. 늦어도 담 달에 회사를 그만 둬라.

모두 자신의 다리를 붙잡을 줄 알았는데, 내가 한술 더 뜨자, 녀석은 멈칫했고, 잠시 우물 쭈물 하더니 가장 염려하던 부분을 조심스레 물었다.

- 근데, R...갔다와선....뭐 먹고 살지?

- 그런 건 전혀 걱정 안 해도 된다. "지금의 너"는 갔다 와서 뭐 먹고 살까를 걱정하고 있지만, 히말라야에 갔다 온 너"는 더 이상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너와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너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 그러니 지금 네가 그것을 미리 걱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걱정하지 마라.

녀석은 결단을 내렸고, 스무 살 때부터의 꿈이었던 히말라야 산악 등정팀에 지원을 했다. 비록 K - 1 이나 에베레스트처럼 이름난 산도 아니고 8,000 미터급 이상의 산은 아니었지만 등반 사망율이 에베레스트를 넘어서는, 근래에만 여러 산악인팀들이 등정에 나섰다 죽음을 맞이했던, 해발 7,556m의 공가산.

- L ! 그동안 너는 히말라야라는 책만 읽어왔고, 히말라야라는 사진만 핥아 왔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이젠 넌 히말라야를 베어 먹게 될 거야. 아! 히말라야! 바로 이 맛!



그렇게 그에게 바람을 집어 넣던 나는 히말라야에 가보았느냐고? 물론이다, 비록 L처럼 등반을 목적으로 했던 여행이 아니라 파키스탄에서 중국의 국경을 넘기 위한 길이었지만. 카라코롬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 실크로드의 한 갈래로 혜초와 많은 천축승들이 불경을 가지러 인도로 갈 때 목숨을 걸고 넘었던 곳. 사람과 말과 소가겨우 지나다니던좁고 가파른 길을 20세기 중반 중국과 파키스탄 양국간의 교역로로 하이웨이 건설이 시작되면서 길을 닦는 20년 동안 천 여명이 사망하면서"피의 고개"란 별칭이 붙은 곳. 전 세계적으로 낙석으로 인한 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으로 해발 고도 4,760미터까지 올라가는길.

산 허리 절벽을 깎아, 눈이 녹은 5월~10 /11월 사이에만 다닐 수 있는 이 길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인간이경험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광경'이라 일컫어 지고 있었다.드높은 설산과 고산 준봉들, 그리고 파란 하늘과 구름 뿐.[하늘길]이라고 불리며 '제3의 극지'라는 호칭에 걸맞게 K2(8,611m) ·가셔브룸 제1봉(8,068m) ·브로드피크(8,047m) ·가셔브룸 제2봉(8,035m) 등 8,000m를 넘는 고봉 4개와 그에 못지 않은 고봉군(高峰群)들 그리고 75km에 이르는 시아첸 빙하와 50km에 이르는 비아포 ·히스파르 ·발토로 등의 장대한 빙하군(氷河群)이 형성되어 있는 곳.

이슬라마바다에서 중국행 비자를 기다리던 폴과 나는 비자가 나오자 마자 베낭을 싸고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사실 이슬라마바다에서 여러 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순전히 중국 입국 비자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인천항까지 닿기에 빠듯한 여행 경비에도 불구하고급행료까지 지불했지만 중국 대사관은 만만디로 버티고 있었던 것.10월 중순이면 11월초,내 여동생의 결혼식이 한달도 남지 않았구나. 눈이 내리면 길이 막히리라.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에는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여동생의 결혼식]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 나의 누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서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나는영국에서 한국까지에 이르는머나먼대륙 횡단 여행을 떠나며 가족들이 염려할까봐연말쯤에나히드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 공항에도착할 것처럼얘기했고,그런 탓에부모님은 내가 여전히영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그런데 여행 도중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여동생이 시집을 간다는 소식. 결혼식이 11월 10일이니 그 전에 귀국하거라.출발시마음 먹었던 코스는 인도와티벳, 중국을 지나 인천항으로오는 길이었지만내 여동생의 결혼식 날짜에 맞추기 위해 나는인도와 티벳을포기했어야 했다. 제 날짜에 도착하려면길이 닫히기 전에 "세계의 지붕"을 넘어야 한다.사실 로마에서 집시들에게 지갑을 털린 탓에내 수중엔 비행기를타고 갈경비도, 티벳을 경유할 경비도, 심지어산뚱 반도까지 가더라도인천항으로 건너가는 배삯이남아 있을런지도 알 수 없었다.어떻게든 쿤자렙 패스(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를 지나 중국에서 대륙 횡단 열차를 타야 한다.


이슬라마바다에서 출발한 우리가 중국으로 가는 길에서 중간 경유지는길기트였다. 인더스강의 원류인 길기트강과 훈자강이 만나는 곳. 북쪽은 타림, 서쪽은 아프가니스탄, 동쪽은 티베트, 남쪽은 인더스강으로 연결되어 고대부터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던 곳이었으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는 소발률이라고 불리던 곳. 공기는 피부로 느껴질만큼 엷어져 있었다. 폴과 나는 길기트에 도착하자 마자 간단한 식사를 했고, 다시버스를갈아 탔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가자, 가자, 더 높은 곳으로! 절벽 아래의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위로 위로 향했다.가파르고 구부러지는 길을속도도 줄이지 않고 줄기차게 달리는 버스는 원래 그렇게 달리는 것인지그날 따라 유난히 불안한 운행을 하는 것인지,릿지 등반을 할 때의 경험들이 되살아 났다.세포 마다 마다파닥 파닥 꽃이 피는 그 느낌말이다.창 밖으론 빙하와설산들이보이기시작했다. 저 수많은 봉우리들 중 어느 봉우리가 죽음의 산 K2일까?

버스가 훈자 마을에 우리들을 내려놓았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 있었다.

훈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모델이 되었다는 해발 2,500미터에 위치한 고산 마을로 해발 6,000미터 이상의 설산들로 둘러싸인 곳.그곳에서 폴과 나는그날 훈자를 지나간 사람이아니라면 결코 경험하지 못할기이한 풍경을 보게 되는데...........투 비 컨티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