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_대륙횡단여행

[14] 히말라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삐노 2006. 11. 9. 20:43


훈자에서의 아침은 고요하다. 그 고요함의 한 가운데좌우로길게 뻗은길이 지나간다.카라코람 하이웨이다.히말라야의손금같은그 길을 따라은행나무가 마치플라톤의 이데아에서 가져온듯한 정말 샛노란 빛깔을하고 서 있다.훈자를 둘러싼설산들처럼 은행나무들은키가 유난히 크고,가지들은마치 미류나무처럼위로 위로 뻗어가고있다. 그건 마치 노랗게 타오르는촛불처럼 보인다.아마도 다시는 그렇게 샛노란 은행잎은 보지 못할 듯 하다. 그건비틀즈의 노란 잠수함처럼 노란이상향으로남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이동수단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웃음으로 넘었던기억 속으로천천히 녹아 든다.

폴과 나는 그날 바로 중국 국경을 넘기 위해 아침 일찍 게스트 하우스를 빠져 나왔다.나는 가죽 점퍼를 폴은 두터운 파카로 4,670미터를 넘을 채비를 했다.버스가 다니기에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면 히치하이킹을 해서라도 수스트에9시전에 도착해야한다. 수스트에 9시 이후에도착하게 되면국경통행차량 대기자 명단의꽁무니에 남을 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오늘도 파키스탄에서 하루밤을 보내야 될런지 모른다.


근데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도 히치하이킹이 가능할까? 봉고차를 렌트해서 지나가는 사람, 짚차를 렌트해서 지나가는 사람, 단체관광용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아직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히치하이킹을 해서 지나갔다는여행자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염려하지말자.지상의 길들뿐만 아니라 [은하수를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폴과 나는 히말라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되어 카라코람 하이웨이에 멈춰선채 지나가는 차량을 기다린다.게스트 하우스가 있던 언덕에서내려오면서 지나가는봉고차 한 대를 보았다.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을 거리였고, 아마도 좌석은 꽉 차 있었을 것이다. 20분이 지나도한대의 차량도 지나가지 않는다. 너무 일찍 나선 것일까?아직 태양은6000미터까지 올라오지않았고, 그늘진 도로는 유난히 시리다, 발끝이.


고개를 들어 지난밤에목격한 불의 동맥들의 그 흔적을 찾아 보지만 히말라야 도깨비의 장난처럼 어떤 자욱도 남아 있지 않다. 과연 그들이 준비해두었던 액체는 무엇이었을까? 휘발유라면그렇게느릿 느릿불길이 내려오지는 않았을 테고, 그렇게 느리게 산줄기를 타고 내려왔다면 타고 남은 흔적이 있었을텐데,SF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지난밤 불의 동맥이 지나가던 자리에는 깨끗한 암석과 얼음 덩어리밖에 보이지 않는다.폴과 내가 지난밤의 감흥을 지우지 못한 채 이런 저런 추측들을주고 받으며서 있는 동안 드디어 한 대의 트럭이 달려온다. 과연 세워줄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탈 자리가 있을까? 히치하이커들의 국제 공용어 엄지 손가락을 들어 흔들어 댄다.

끼익. 퀘에보타 사타티미라? 수스트! 수스트! 트럭 운전수가 묻는 질문을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는 분명 어디로 가는길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타라는 손짓을 한다. 배낭을 들고 차에 오를려고 하자, 트럭 짐칸에 실어라는 손짓을 한다. 짐칸은 텅 텅 비어 있다.앞 좌석은 비좁지만 그런대로 세 사람의 좌석이 준비되어 있다. 운전수와 두 사람분의 보조석.이 세상 어느 길 위에서라도히치 하이킹은가능하다. 그곳에 길이 있고, 지나가는 차량이 있다면!

트럭이출발하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 든다.파키스탄 운전수들은어떤 이유에선지 자신의 버스나 트럭을 온갖 장식물로 치장을 한다. 어떤집도, 옷도 차량보다 화려한 것은 없다.어떤 차량은 실내공간까지 빨갛고 황금빛이 나는 장식으로채워져 있고심지어 앞유리창의 테두리도 운전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남기고 울긋 불긋한 장식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보다 넓은 풍경을 감상하고 싶은여행객들의 눈에는 시야를 가리고 있는장식물들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쉽상이다.

그건 마치 와이드 화면으로 제작된 영화를좌우가 짤린 4:3 비율의 TV 화면으로 보는 것과 같다. 같은 영화를 숱하게 봐온 사람들은 4: 3 화면에 대해서 별로 의식을 하지 않겠지만 처음 그 영화를 보는데 첨부터 좌우로 짤린 화면을 봐야 한다면 이건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더 많이, 더 넓게 보고 싶다. 그러나, 그런 여행객들의 욕구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아리조나 사막같은 곳에서 오픈카를 타고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며 드라이버를 하는 것은 멋들어질지 모르지만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는자살 행위와 같다. 안 그래도 낙석 사고가 전세계에서 가장 빈번한 이곳에서 작은 돌멩이라도 수천 미터, 혹은 수백미터를 굴러내려와 머리통에 떨어진다면, 그 즉시 그래 즉사다. 그래서 우리가지상 최고의 광경을그 답답한 트럭 안에서 놓치고 말았다면 나는 훈자에서 바로 중국의 국경 카슈가르로 건너뛴 여행기를 적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위험하니 안된다고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트럭 운전수에게 침낭으로 머리를 돌돌 말고,베낭까지 머리에 얹은 시늉을 하고서야트럭 뒤칸에 올라타는 것을 허락 받았다.드디어 히말라야를 가로지르는오픈트럭 롤러 코스트 가시작된 것이다.


자, 이제 제대로 상상해 보길 바란다.일반 버스나미니 버스, 봉고차, 혹은 짚차에몸을 싣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지나간 사람들은 많다.그러나, 트럭 짐칸에 몸을 싣고 히말라야의하늘 천, 땅 지, 산 뫼, 강 강을 초와이드 화면으로 즐기며지나간 사람은드물테고 여지껏들어본 적이 없다.'인간이경험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광경'이라 일컬어 지는 그 길 위를온몸에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기분은......아, 표현을 못하겠다. 짐칸에 우리를 태운 트럭이 출발한지15분이 지나자폴과 나는 사방으로 펼쳐지는 황홀한 광경에 가슴이 벅차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때 폴이뭔가를 가방에서 꺼내들었다.

- 이제딱 두 개피가 남았어.하나는 너, 하나는 나.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 남겨뒀지.

가장 높고 험준한산이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듯이가장 위험한이동수단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였다. 적당히 안전한 삶의 좌석에 앉아,적당히 아름다운 장면을 보며 여행을 하고, 그렇게 이 행성을 지나갈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는 듯이 폴이마리화나 연기를 뱉으며키득 키득 웃기 시작했다. 이어 내가 키득 키득 웃기 시작했다. 내가웃는 모습을 보며 아마도 이런 저런 생각으로 웃고 있겠지 짐작을 하며 폴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모습을 보며폴이아마도 이런 저런 생각으로 웃고 있겠지 짐작을 하며 나도 깔깔깔웃어댔다. 파키스탄의 북쪽 국경마을, 수스트로 향하는 히말라야의 설산과 설산 사이로 난 험준한 여행길을 따라 폴과 나의 웃음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만물이태어나고,죽고, 분해되어 다시 태어나는 순환을 반복하며한번 난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듯이, 히말라야의 바람과 공기에 의해 흩어지고 분해되어지금 한 순간은 지워질지라도 폴과 나의 웃음 소리 역시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채 이 세상에 남으리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