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_대륙횡단여행

[10] 이니스프리 탈출과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의 시작

삐노 2006. 10. 6. 18:48


나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 그곳에 진흙과가지를 얽어작은오두막을짓고/콩밭 아홉 이랑, 꿀벌통 하나/ 꿀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 놀타고 평화는오리 /밤은 환하고 낮엔 보랏빛 어리는 /저녁이면 방울새 날개소리 들리는 거기.

나 일어나 지금 가리,밤에나 또 낮에나 /호숫물 찰랑이는 그윽한 소리 듣노니 /맨길에서도, 회색 포장길에서선 동안에도 /가슴에 사무치는 물결 소리를.

- W.B 예이츠의이니스프리 호수 섬中

그날 아침,침낭 밖에서 들려오는 잉잉 거리는 소리가 그저 워커맨의 STOP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잠든 탓이라고 여기며 뒤척거릴 때였다.토마스가 잔뜩 긴장된목소리로, 그러나 나즈막하게 불렀다.

- R, 일어났어?

- .

- 문제가 발생했어!

- 무슨 문제? (침낭을 휘딱 뒤집고 일어날려는 찰나!)

- 안돼! 일어나지 말고 천천히 침낭을 걷어서 봐.

- ????

조심스럽긴 해도좀처럼 긴장 하지 않는토마스의 목소리가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음....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그렇게 예감은 했었지만 막상 침낭을 천천히 걷고 나서 내가 본환타스틱 캠프, D-1동, 콘크리트 큐브 안의풍경은 내가 그곳에서 수많은 환각들을 경험하면서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모습이었다. 잉잉 잉잉 잉잉 잉잉 잉잉 천정에는 수천 수백마리의 벌들이 달라붙어 있었고, 또 수백마리의 벌들이 잉잉거리며벽, 천정, 유리창할 것 없이 온몸을 부딪혀 대며 좁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 이런 젠장, 꿀벌이 잉잉 대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한 녀석이대체 어떤 놈이었어? 나는화들짝 침낭으로 얼굴을 덮고는 꿀벌처럼 잉잉 대는 목소리로 물었다.

- 대체 어떻게 된거야?

- 모르겠어. 1시간 전부터 보고 있었어. 별들이 나가면 널 깨울려고 했는데, 나가기는 커녕 점점 더 늘어나더라구. 이유는 모르겠지만 깨어진 유리창으로 계속 몰려들어.저것들은그냥 벌(Bee)이 아냐.말벌(Wasp)이라구.까딱 잘못 하다간우린 여기서죽을 수도 있어.

-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볼까?

- 여기 우리 두 사람 밖에 묵지 않는데 누가 오겠어? 이미 우리가 놀러 나간 줄 알겠지.

- 그럼, 소리를 지를까?

- 이봐, R! 이 안에서 지르는 소리가 다른 캠프동까지 들리겠어? 게다가 우리가 지르는 소리 때문에 벌들이침낭 속으로 달려들면? .

[이니스프리의 방]에서탈출하는 방법에 대한 오랜 격론 끝에 폴과 내가 도달한 결론은 침낭 안에서 최대한빨리 뛰쳐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잡은 후 하나, , 셋과 동시에 침낭으로 온몸을 감싸안고 문을 걷어차고 달려 나가는가장 단순무식한 방법.설마 바깥에서 누가 문을 잠가두지는 않았겠지?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한국 속담도 있다구! 자아, 하나, , 세......

- 근데, 셋 하고 나서 뛰는 거야 아니면 셋 하면서 뛰는 거야?

우리는 침낭으로 머리를 감싸안고, 문을 열어 젖히고, 맨발로 맞은편을 향해 사정없이 달렸다. 문에서열걸음 정도 빠져 나와 달리고 있을때만 해도휴우,살았구나하고 안도를 했다. 그래, 최대한 멀리 달아나자.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나는 스무 걸음도 달아나기 전에마치 아킬레스 건을 총알이 관통한 듯한 통증을 느끼며풀숲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캠프 사무소에 일하는 직원과 함께 폴이괜챦냐고 물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발목은 총알 자국대신 말벌에쏘인 자국으로퉁퉁 부어 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말벌에게 물린, 그래 첫 경험이었다. 다행히 정수리가 아닌데다가 한놈의 말벌 스나이퍼에게쏘인탓에목숨은 건졌다.캠프 사무소의 직원은곧 벌떼 소탕작전에 들어갈테니서너 시간 후에 돌아오라고 말했다.왜 수천마리의 말벌들이 그 방으로몰려 들었던 것일까?말벌들도 톰 웨이츠를 좋아하는 것일까?

지난 밤이 여느 날 밤과 다른 게 있었다면[마리화나 흡연 후의의식 곡선]과[마리화나 흡연 후의 기억 한계점]에 대한연구를 하던 내가지난 밤엔[마리화나가 음악 예술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험론적 연구에 몰두했다는 것 뿐.실험재료로톰 웨이츠를 틀어둔 채, 고막을 긁어대는 듯 선명한악기소리를 들으며, 가상의이퀄라이즈가 마치 폭죽처럼 펑 펑 터지는 장면을 보며 잠이 들었었는데.......환타스틱 캠프에는히피 화가 토마스에서부터 이라크 탈영 전문가자크, 히말라야에서 바바지를 찾아 다니는 영성가 다크야, 환각제밀수입수출 전문가 다비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머물고 있었지만 곤충학자는 없었던 탓에 결국 말벌들이 환타스틱 캠프 D -1 동을 습격한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절뚝 절뚝 걸으며수다쟁이 다비드(이탈리아인들의 90%는 수다쟁이들이다. 그리고이들은 손을 묶으면 말을 못한다. 아마도유전적으로 손과 혀가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의 캠프로 안정을취하러 갔다.다비드의캠프동 앞 마당에는토마스가 나에게 전수했었던[하시시 원시 제조법]을시연하고 있었고, 옆에 앉은다비드는 손을 이리 저리 놀리며 정신 없이떠들어 대고 있었다.

하시시 원시 제조법

1.마리화나 이파리들을손바닥으로 새끼를 꼬듯마구 비벼댄다.

2. 손바닥에 이파리에서 배어나온 마리화나 진액이 끈적하게 묻는다.

3.새 이파리를 찾아 계속 비빈다. 손바닥은새까맣게 변한다.

4.마리화나 진액이 마를 때까지기다렸다가 하얀 종이를 펴고벗겨 낸다.

5. 진흙처럼 떨어져 나온 진액 가루들을 모아 쪼물딱 쪼물딱 뭉친다.

6. 동그랗게 혹은 네모나게 쵸콜릿 덩어리같은 하시시가 완성된다.

- 여긴 정말 마리화나의 천국이야, 인도에서는 블라 블라 블라. 이탈리아에서는 블라 블라 블라....네팔에서는 블라 블라 블라

- 우리나라로 가지고 가고 싶은데, 공항이나 항구에서 걸릴테니 가져갈 수도 없고. 여기서 실컷 피워야 겠어.

- 안 들키고 가지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 정말? 어떻게?

- 이파리나 줄기, 꽃은 냄새가 나는데, 씨앗은 비누로 깨끗이 씻으면냄새가 안 나. 씨앗을 가지고 가서, 비이커에 솜을 깔고 싹이 돋을 때까지 조심해서 키운 뒤에 화분에 심으면 돼!


아마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를 꼼꼼히 읽어왔던 사람이라면 자기 나라로 가져 가고 싶다는대사를 친 저 작자가 누구였는지 대충 짐작이 가리라.

나는 상상했다.학교 야산을[마리화나 야생군락지]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중국 국경검색대]와 [인천항 검색대]를 지나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가 성공하면,집에서 [다비드의 재배법]대로잘 재배한 후, 복학 하는 즉시 학교 야산에 심는 거다.그것들은 잡초처럼 무럭 무럭 자랄테고,일반인들은마리화나를 보아도 알지 못한다.게다가 야생 마리화나를 학교 야산, 인적 드문 곳에 심어 버리면 누가 심었는지 저절로 자란 것인지 알게 뭐람.졸업을 하고 나서는잠시 잠시 들러 햇빛에 말린 마리화나를 뽀꿈 뽀꿈피우며.......흐흐흐흐하하하하. 상상 끝, 실행이다!!!

그렇게 삐노의 무뇌아적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는 시작되었다, 단 한번도 증명된 적 없는 [마리화나 씨앗 비누로 씻어 운반하기]밀수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