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_대륙횡단여행

[9] 타바코 행성에서 날아온 평화 사절단의 비행선

삐노 2006. 9. 29. 14:51


우리는 평화를 지겨워하는 자들 틈에 너무 오래 살았구나. 평화, 이 말 한마디만 해도 저들에게는 싸움 거리가 되는구나. I am tired of living here among people who hate peace. As for me, I am for peace, but when I speak, they are for war!

[시편 121장 6~7절]

이슬라마바다에서 내려 소고기와 콩을 갈아 만든 짜파티로 저녁 식사를 하고 캠프 앞에 이르렀을 때, 그곳은 또 다른 사람들과 함성으로 붐비고 있었다. 한적하던 4차선 도로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로 붐 비는 것은 캠프에서 지낸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군중들은 햇불을 들고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고, 50미터 가량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또 다른 무리들은 제복을 입고,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시위였다. 폴과 나는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텅 빈 도로를 건넜다. 버스 정류장에 몇 명의 사내들이 앉아 있었다. 차양막 안으로 들어서자 토마스가 인사를 했다.

- 어이! 어디 갔다 오는 길인가?

- 아, 토마스! 다라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 재미있던가?

- 얼마 구경도 못하고 쫒겨났어요. 무슨 일이죠?

- 글쎄, 데모를 하는가봐.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조금 전에 한 종교 단체의 지도자가 자신의 사원에서 저격 당했어요. 저들은 지금 복수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반대파의사원을 향해 가려고 하고 경찰은 저들을 저지하고 있는 겁니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아랍인 청년이 누구를 쳐다보는 것도 아닌, 시위대와 경찰들의 시선이 맞부딪히고 있을 한 지점의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말인듯, 더듬 더듬 설명했다.

-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저 시위대에 참가하지 않는 걸로 보니 반대파를 지지하는 가 보군요. 당신들 쪽에서 저쪽 지도자를……

폴의 말은 끝맺기도 전에 함성과 발자국 소리에 묻혔다. 경찰은 양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냈다. 물대포차가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위대쪽에서 던진 몇 개의 돌이 경찰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So stupid……! 난 어느 편도 아닙니다. 난 파키스탄 사람이 아닙니다. 이라크인입니다. 전 탈영했습니다. 왜 내가 원하지도 않는 전쟁에 나가서 죽어야 합니까?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없던 국가가 이제 와서 내 목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내가 죽으면 국가가 두번째 목숨을 보상해 줍니까?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살고 싶어요.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그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토마스가 자신의 호주머니를 더듬더니 궐련을 그에게 내밀었다. Peace! 아마도 낮에 갓 따서 말린 햅마리화나일 것이다. 토마스는 다라를 향해 떠나며 검문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담배만 챙겨 간 폴과 나에게도 한 대씩 내밀었다. 토마스는 정말 궐련을 마는 데 있어서 최고의 요리사, 아니 기술자였다. 하얗고 도톰한 그것은 마치 타바코 행성에서 날아온 평화사절단의 우아한 비행선처럼 보였다. 우리는 다 같이 비행선의 엔진엔 불을 붙였다. 그리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비행선의 연료 계기판에 바닥(Empty)을 알리는 불이 들어올 즈음, 물대포가 시위대의 선두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돌이 날아가고, 거리는 젖고, 함성 소리가 퍼졌다. 왜 그랬을까? 나는 [퐁네프의 연인들] 중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물줄기는 가로등 불빛에 산산히 부서지며 수천 개의 폭죽처럼 보였고, 젖은 도로는 강물처럼 번들거리며 그 불꽃들을 반사 시켰다. 그리고 시위대와 경찰은 미셸과 알렉스가 엉켜 춤을 추듯 격렬하고 환상적인 춤을 추고. 그때 토마스가 내 옆구리를 툭 치더니,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 정말 낭만적인 밤이군!

보태기: 지금 와서 되돌아 보면 토마스의 So romantic nigtht!이란 속삭임은 이라크 청년의 So stupid! 와 다른 의미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리고 지금 내 머리 속에서 이라크 청년이 내뱉던 말은 국가가 필요로 할 때, 기꺼이 2년 동안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한한국 청년으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 한국 청년은 울부짖고 있다.

-I don't want to die! I want to live! (2004년 6월 21일 한국 시각 새벽5시)